2019년 5호 [뉴스 뒤집어보기] ILO 기본협약 비준 두고 노동계와 경영계 대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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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조회 617회 작성일 19-08-01 13:35본문
ILO 기본협약 비준 두고 노동계와 경영계 대립
노동존중사회 올 수 있을까?
제1차 세계대전의 상처가 채 사라지기 전인 1919년 4월 11일, 세계 각국의 대표들은 세계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개선을 목적으로 하나의 기구를 설립한다. International Labor Organization. ILO라고 부르는 국제노동기구다. 올해는 ILO 설립 100주년을 맞이하는 뜻 깊은 해이다. 우리나라에서도 ILO 100주년을 맞이하는 각종 토론회가 이어지고 있다. 한국노총을 비롯한 노동계는 ILO 100주년인 올해야말로 우리나라가 아직까지 비준하지 않은 4개의 기본협약을 비준할 때라고 강조하고 있지만, 경영계는 파업 시 대체근로 허용 등 노동기본권을 빈껍데기로 만들 내용을 ILO 기본협약 비준과 맞바꾸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고 있다.
기본협약 중에서도 핵심인 ‘결사의 자유’ 협약 미비준
ILO는 자유롭고 평등하고 안전하게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는 노동을 보장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1919년 탄생 이후 1946년에는 최초로 UN 전문기구로 편입되기도 했다. ILO는 2018년 말 기준으로 UN 회원국 193개국 중 187개국이 회원국으로 가입되어 있다.
ILO는 설립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국제노동기준을 협약과 권고의 형태로 제정하여 노동기본권에 대한 최소한의 기준을 설정하고 이를 준수하는지 감독하고 있다. 또한, 직업훈련·직업재활, 고용정책, 노동행정, 노동법 등의 분야와 관련된 기술지원을 제공하는 한편 독립적인 노사단체의 발전을 증진하고 이들에 대한 훈련과 자문을 제공한다.
ILO 기본협약(Fundamental Convention)은 회원국이 수행해야 할 가장 기본적이고 기본적 의무사항을 규정한 규범으로, 1998년 기본원칙 선언에서 열거한 ▲결사의 자유(제87호, 제98호) ▲강제노동 금지(제29호, 제105호) ▲아동노동 금지(제138호, 제182호) ▲차별금지(제100호, 제111호)로 총 4개 분야, 8개 협약으로 구성된다.
기본협약은 노동권에 관한 기본적 규율 원칙을 밝힌 것으로, 모든 ILO 회원국은 비준의 의무를 부담해야 한다. 현재까지 ILO가 정한 기본협약 8개를 모두 비준한 국가는 141개국이다. ILO는 기본협약 미비준 회원국에 대해서 비준 전망 및 미비준 사유를 매년 보고하도록 하며, ‘결사의 자유’에 대해서는 비준 유무에 관계없이 ‘결사의 자유 위원회’를 통해 해당 회원국 정부에 ‘권고’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은 ILO 기본협약을 얼마나 비준하고 있을까. 8개의 기본협약 중 아동노동 금지와 차별금지에 관한 4개(제 38호, 제182호, 제100호, 제111호)는 비준했지만, 결사의 자유와 강제노동 금지에 관한 4개(제87호, 제98호, 제29호, 제105호)는 비준하지 않고 있다. 한국처럼 ‘결사의 자유’와 ‘강제노동 금지’에 관한 4개 협약을 모두 비준하지 않은 회원국은 전체 187개국 중 단 6개국밖에 없다. 중국, 마샬제도, 팔라우, 통가, 투발루, 그리고 한국.
한국이 지금까지 비준하지 않은 협약은 어떤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것일까. 먼저 제87호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 협약’은 8개 기본협약 중에서도 핵심적인 내용을 포함한다. 즉 노동자와 사용자가 각자의 이익을 보호하고 증진하기 위한 목적으로 어떠한 차별도 없이 스스로 선택하여 단체를 설립하고 가입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단체 및 사용자단체는 규약과 규칙을 작성하고 자유로이 대표자를 선출하며 관리 및 활동에 대해서 결정하고 그 계획을 수립할 권리를 가진다. 공공기관의 경우 이 권리를 제한하거나 합법적인 행사를 방해하고자 하는 어떠한 간섭도 중단하여야 하며 노동자 및 사용자는 권한 있는 기관에 의하여 해산되거나 활동이 정지되어서는 안 된다고 밝히고 있다. 노동계가 주장하고 있는 ‘노조 할 권리’의 모든 내용이 제87호 협약에 들어있는 셈이다.
또한, 노동자 및 사용자단체는 이들 단체와 동일한 권리 및 보장을 받는 연합단체와 총연합단체를 설립하고 이에 가입할 권리를 가진다. 이들 단체는 국제 노동자단체 및 사용자단체에 가입할 권리도 가질 수 있다. 이 협약에서 규정한 권리를 행사하는 데 있어서 노동자 및 사용자 그리고 단체는 다른 국내법령을 존중하여야 하지만 국내법령과 그 법령의 적용으로 인해 협약에 규정한 보장내용이 침해되어서는 안 된다.
‘결사의 자유’ 분야의 또 다른 협약인 제98호 ‘단결권과 단체교섭권의 협약’은 단결권을 행사 중인 노동자에 대한 보호, 노동자단체와 사용자단체 간의 상호 불간섭, 자발적인 단체교섭 추진을 목적으로 한다.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원이라는 이유로 인한 고용거부, 노동조합원 또는 노동조합 활동참여를 이유로 한 차별 또는 편견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
사용자나 사용자단체가 노동자단체를 지배·재정지원·통제하려는 행위에 대해서도 보호가 이루어져야 하며, 필요한 경우 협약에 명시된 단결권을 보장하기 위하여 각국의 상황에 맞는 기관을 설립할 수 있다. 또한, 각국의 상황에 맞는 조치들을 취하여 고용조건과 상항을 규제하기 위한 자발적인 단체교섭을 격려·촉진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강제노동 금지’ 분야 제29호 ‘강제노동협약’도 미비준 상태다. ILO는 강제노동을 어떤 사람이 처벌의 위협 하에서 강요받는 경우를 포함해 자발적으로 제공하는 것이 아닌 모든 노동이나 서비스를 의미하는 것으로 폭넓게 해석하고 있다. 강제노동에서 제외되는 경우는 ▲의무군복무 ▲국민의 특정의무 ▲교도소 내의 강제노동 ▲비상시의 강제노동 ▲소규모 공동체 노무로 한정되고, 이를 제외한 강제노동의 불법적 강요는 형사범죄로 처벌돼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제105호 ‘강제노동철폐 협약’은 강제노동을 금지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ILO는 ▲정치적 강압, 교육의 수단, 정치적 견해 또는 기존의 정치·사회·경제 제도에 사상적으로 반대하는 견해를 가지거나 표현하는 것에 대한 제재 ▲경제발전을 위하여 노동을 동원하고 이용하는 수단 ▲노동규율의 수단 ▲파업 참가에 대한 제재 ▲인종·사회·민족 또는 종교적 차별대우의 수단으로 강제노동을 활용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으며, 회원국에 강제노동 금지 조치를 취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경영계, “ILO 기본협약, 한국 노사관계상황 반영해야”
ILO 기본협약 비준에 대해 경영계는 냉소적이다. 6월 ILO 총회를 앞두고 기본협약에 대한 비준의 움직임이 한창이던 지난 3월, 한국경영자총협회와 대한상공회의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 경영자단체는 공동으로 입장문을 발표했다. 입장문에서 경영계는 기본협약 비준에 따라 우리나라 노사관계의 기본 틀이 바뀔 만큼 지대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노사 등 이해 당사자들이 모여 충분한 논의와 협의를 통해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한 후에 추진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경영계는 “결사의 자유 협약을 비준하지 않은 것은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 중국, 인도 등이 존재하며, 이는 국가별로 자국의 경제·사회·문화적 상황을 고려하여 결정”하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기본협약을 비준한 유럽 국가의 경우는 한국과 노동조합 형태가 다르고 오랜 노사관계 경험을 기반으로 협력과 타협으로 갈등을 해결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고, 일본의 경우 협력적·안정적 노사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단결권 확대가 문제되지 않는다”면서 “한국의 노사관계는 기본협약을 비준한 국가들과 달리 대립적이고 갈등적인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에 ILO 기본협약 비준도 다른 방향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한국의 ‘기업별노조’라는 특징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경영계는 “유럽의 산별노조 체제와 달리 한국은 오랜 기간 기업별노조를 중심으로 한 노동운동이 발달해왔다”며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단체교섭, 쟁의행위 부분에서 노동조합이 협상테이블보다는 파업 등 테이블 밖의 물리적인 행동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관행이 형성돼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경영계는 이에 대한 증거로 지난 2018년 국가경쟁력 평가 결과를 들고 나왔다. WEF(세계경제포럼)가 발표한 국가경쟁력 순위에서 한국은 15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노사협력부분에서는 전체 140개국 중 124위, 고용·해고 관행 87위, 정리해고 비용에서는 114위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노사관계가 협력적이지 못하고 고용·해고가 어렵다는 것인데, 협상보다 물리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우리나라 노사관계의 특징 혹은 관행에서 이유를 찾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단결권이 확대되는 ILO 기본협약이 비준될 경우, 노사 간 힘의 불균형이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경영계는 우려하고 있다. 성명서에는 “해고된 자, 퇴직자, 실업자, 사회적 활동가 등 기업과 무관한 자들까지 노동조합에 가입이 가능해지면서 노사관계 패러다임이 뒤흔들릴 수 있다”며 “비(非) 노동자들까지도 노동조합에 가입하면 노동조합 활동도 노동자의 권익보호, 근로조건 향상이라는 문제를 넘어 정치적, 사회적 쟁점에 관한 요구로까지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하고 있다.
경영계는 협력적·타협적 노사관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ILO 기본협약 비준을 통해 발생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면서, 사용자의 ‘생산활동 방어기본권’ 보장 차원에서 ▲대체근로 허용 ▲부당노동행위제도 개선 ▲사업장 내 쟁의행위 금지 ▲쟁의행위 찬반투표절차 보완 ▲단체협약 유효기간 확대 5대 요구사항이 반영되어야 한다고 제시했다.
한국노총, “노동존중 사회로 가려면 ILO 기본협약 비준해야”
경영계의 주장은 말만 보면 당연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결국 비준하지 말자는 말을 그럴듯한 말로 포장한 것에 불과하다. 예컨대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한 후에 비준하자는 말은 단기간 내에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려운 노사의 입장 차이를 고려할 때 사실상 지금은 기본협약을 비준할 때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다.
경영계의 성명서에 대해 한국노총은 “우리나라 산업현장의 현실을 왜곡한 사용자단체의 입장에 대해 매우 안타깝고 유감스럽다”는 논평을 내놨다. 한국노총은 “한국 노사관계가 대립적이고 갈등적이 된 이유는 노동자들을 이윤 추구의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사용자들의 노동자 무시와 전근대적인 갑질문화에서 기인한 것”이라며 “진정으로 노사관계 개선을 원한다면 그릇된 인식을 바꾸는 것부터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한 노동계 쪽으로 힘의 균형이 기울어져 있다는 경영계의 주장에 대해 한국노총은 “노동조합 조직률이 10%밖에 안 되는 한국의 현실을 왜곡해하는 어불성설”이며 “기업별노조 체제를 산별노조 체제로 전환하려는 노동계의 오랜 숙원을 방해한 것은 사측”이라고 지적했다. “경영계가 요구한 ‘생산활동 방어기본권’도 ‘노동기본권을 무력화’하는 내용으로 고려할 가치조차 없는 요구”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한국노총은 6월 10일부터 21일까지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제108차 ILO 총회에 맞춰 6월 11일 국회의장과 여야 5당 대표들에게 서한을 보내 ILO 기본협약 비준을 촉구했다. 이 서한에서 한국노총은 “ILO 기본협약 비준은 한국사회가 국제사회와 맺은 오랜 약속”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한국은 1991년 ILO 가입 당시는 물론, 1996년 OECD 회원국 가입, 2006년 유엔인권이사회 이사국 출마, 한-미 FTA, 한-EU FTA 협정 체결 등 주요한 이슈가 있을 때마다 ILO 기본협약 비준을 약속했다. 한국노총은 서한을 통해 짧게는 2년에서 길게는 2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기본협약의 절반밖에 비준하지 못한 것은 큰 문제라고 지적하면서, 국제사회와의 약속뿐만 아니라 대통령선거에서도 문재인 대통령이 ILO 기본협약 비준을 약속한 바 있기에 정부가 책임감을 가지고 비준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노총은 또, 유럽연합(EU)이 한-EU FTA 상 무역과 지속가능발전 분쟁해결절차 제13조 제4항에 근거하여 우리나라에 공식적인 분쟁해결절차를 개시한 상황도 ILO 기본협약을 비준해야 할 이유 중 하나라고 밝혔다. 제13조 제4항에서는 ‘ILO 기본협약 및 주요 협약들을 비준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이 명시되어 있고, 실제로 EU는 이 조항을 근거로 기본협약 비준에 대한 약속이행을 촉구하며 “기본협약 비준이 불이행될 경우 한국의 국가위상에 손상에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결국 ILO 기본협약 비준을 미루는 것은 FTA 조항을 위반하는 것으로 한국이 불명예를 떠안을 수 있는 ‘국격’이 걸린 사안인 셈이다.
ILO 기본협약 비준은 ‘노동존중사회로 가는 첫 걸음’이다. 문재인 정부가 대선공약과 국정과제에서 ILO 기본협약 비준을 통한 노동기본권 보장을 약속한 만큼, ‘노조 할 권리’를 통해 노사의 자율적 교섭체계 및 노사상생문화를 구축하는 것은 노동존중사회로 가는 지름길이며, ILO 기본협약 비준은 그 길 위에 첫 발을 내딛는 일이다.
그동안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의 사회적 합의가 우선이라며 책임을 회피해왔던 고용노동부가 결국 ‘선비준’으로 입장을 선회한 것은 진일보한 것이지만, 여전히 미흡함이 남는다. 우선 고용노동부가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한 비준동의안은 경사노위 노사관계제도·관행개선위원회에 참석했던 공익위원안을 토대로 하는데, 공익위원안에 대해서는 노사 모두 반발하고 있다. 노사 간의 이견뿐만 아니라 여야 간의 입장차도 크다. 더구나 내년 총선을 앞둔 국회에서 비준안을 합의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정부가 제출할 비준동의안에 4개의 미비준 기본협약 중 3개만 포함된 것도 문제다. 제105호 강제노동철폐 협약이 우리나라의 형벌체계와 분단국가 상황 때문에 추가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제외됐는데, 징벌적 성격의 강제노동, 외국인노동자에 대한 차별과 강제노동이 근절되지 않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악용될 소지가 다분하다.
이 외에도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약속했던 노동존중사회 실현을 위한 정책들이 경제상황과 맞물려 후퇴하고 있는 점도 우려를 낳고 있다. 최저임금만 해도 3년 이내 1만 원 달성을 공약했다가 임기 내 1만 원 달성으로 후퇴하더니, 최근에는 경제상황과 자영업자들의 반발을 핑계로 속도조절론에 힘이 실렸고, 결국 내년 최저임금은 역대 3번째로 낮은 인상률을 기록했다. 이를 감안할 때 ILO 기본협약 비준 문제 역시 안 그래도 미흡한 공익위원안에서 더 후퇴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를 낳고 있는 실정이다. 더욱 관심을 가지고 정부와 국회에서의 논의 상황을 주시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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